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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릴 수 없는 기찻길 – 끊긴 철길의 정체

by afflux-th 2025. 7. 13.

달릴 수 없는 기찻길 – 끊긴 철길의 정체
– 선로 위에 핀 잡초, 시간 위를 걷는 산책

 

오늘은 ‘끊긴 철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달릴 수 없는 기찻길 – 끊긴 철길의 정체
달릴 수 없는 기찻길 – 끊긴 철길의 정체

 

 

 

도시의 공간에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지만 남아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
기차가 지나가지 않는 선로,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치우지도 못한 구조물들.

오늘 이야기할 장소는
도심 속 끊긴 철길입니다.

어디론가 향해야 했을 철로는
어느 순간 멈췄고,
그 위로 잡초가 피고,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 철길은
기능을 잃었지만,
기억은 남긴 채
우리의 도시를 조용히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처음 마주한 그 선로


서울 서부의 오래된 동네.
낮은 건물들과 오래된 시장 골목 뒤편,
그 골목을 걷다 보면
갑자기 콘크리트 바닥이 갈라지듯 금속 선로가 드러납니다.

선로는 2줄.
너비는 기차 한 량이 지나갈 정도.
양옆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중간중간 자전거 바퀴 자국,
그리고 아이들이 던진 듯한 작은 돌멩이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철로는 100미터쯤 이어지다가
갑자기 끊긴 듯 멈춥니다.
그 너머는 그냥 아스팔트 도로입니다.

“기차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던 걸까?”
“그리고 왜 지금은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는 걸까?”

 

 

도시 속 사라진 철로의 역사


조금 조사해보니
이 철로는 과거 화물 기차가 다니던 노선의 일부였습니다.

1970~1980년대엔
근처의 공장과 시장에 물류를 공급하는 도시 철도망의 일부였고

그 후 점점 트럭 운송으로 바뀌면서
점차 기능을 잃고 방치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문제는
철로가 철거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일부 구간은 도로로 덮이고,

일부는 아예 위에 인도를 만들고,

또 일부는 그대로 놔둔 채
사람들이 산책로처럼 걷기 시작한 겁니다.

이 도시의 ‘끊긴 철로’는
기능은 멈췄지만, 형체는 살아 있는 과거인 셈입니다.

 

 

선로 위의 풍경


나는 그날 그 철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기찻길 양쪽은
담벼락, 오래된 간판, 작은 창고들이 이어졌고,
가끔은 고양이가 선로 위에 앉아 해를 쬐고 있었습니다.

잡초는 철로 틈을 뚫고 자라 있었고,
녹슨 나사와 풀린 볼트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길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차가 다니지 않고,
사람도 거의 없고,
시간만 흘러가는 고요한 통로 같았습니다.

기차는 오지 않지만
그 길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철길은 왜 철거되지 않았을까?


서울 곳곳에는
이런 방치된 철도 부지가 꽤 많습니다.

이유는 간단치 않습니다.

 - 지자체 간 소유권 문제

 - 재개발과 연계된 예산 문제

 - 철거보다 유지가 더 싸다는 판단

이런 이유들로 인해
애매하게 끊긴 철길이
도심 속에 유령처럼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은
시민들이 그 철길 위를 걸으며 ‘산책로’처럼 쓰기도 하고,
공공디자인 사업의 일환으로
조형물이나 벤치가 들어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철도’라는 점에서
묘한 이질감과 감성을 안겨줍니다.

 

 

움직이지 않는 선로 위에서 떠오르는 생각들


기차는
본질적으로 이동과 연결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철길은
끊긴 연결, 끝난 가능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는 철로 위에 앉아 잠시 생각했습니다.

이 길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그 안에서 누가 무엇을 실었을까?
어떤 시간들이 이 위를 지나갔고,
어떻게 이렇게 조용히 끝을 맞이하게 됐을까?

이 철로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도시가 접어놓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끊긴 철길의 재생 가능성


사실, 이런 철로가 모두 폐기물로 끝나는 건 아닙니다.

몇몇 도시는
이 철로들을 ‘도시 기억의 산책로’로 바꾸고 있습니다.

 - 서울 경의선 숲길

 - 뉴욕 하이라인 파크

 - 파리의 Coulée verte

이들은 모두
버려진 철도 위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사례입니다.

중요한 건,
그 철로가 지나온 과거를 지우지 않고,
그 위에 현재를 얹는 방식으로 복원된다는 점이죠.

기능은 멈췄지만
감성은 되살아나는
도시 속 철로의 재해석입니다.

 

 

📩 마무리하며: 당신의 동네에도 그런 철로가 있나요?


혹시 당신도
어릴 때 자주 걷던 철길이 기억나나요?
지금은 없어졌거나,
그냥 조용히 남아 있는 그 길.

그곳은
기차가 더 이상 오지 않지만,
사람들이 걸으며 과거를 되짚는
시간의 통로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