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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사기 냄새와 필름 인쇄지의 기억

by afflux-th 2025. 7. 15.

등사기 냄새와 필름 인쇄지의 기억
– 보라색 잉크의 시험지, 잊을 수 없는 종이 냄새
– 복사가 아니라 '찍어냈다'는 감각

 

오늘은 ‘등사기’와 그 독특한 냄새가 배어있던 ‘필름 인쇄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등사기 냄새와 필름 인쇄지의 기억
등사기 냄새와 필름 인쇄지의 기억

 

 


시험지, 학급 회지, 동아리 소식지, 공지문…
어릴 적 받았던 수많은 종이들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보라색 글씨가 흐릿하게 번진 종이,
그리고 그것을 받자마자 킁킁 맡던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건 지금의 프린터나 복사기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죠.
종이 하나에도, 손때와 냄새와 열이 묻어 있던 시대.
오늘은 등사기라는 기술과, 그 시대의 향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보라색, 흐림, 번짐 – 등사본의 감각


등사지는 대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죠:

잉크는 보라색 혹은 파란색, 번지거나 얼룩이 많았고

글씨는 약간 기울어져 있었으며

연한 잉크 덕분에 오래 보면 눈이 아플 정도로 흐렸고

종이마다 냄새가 진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독특했던 건
‘따뜻한 종이’의 촉감과 냄새’였습니다.
막 인쇄된 시험지를 받자마자
의도적으로 코에 가져다 대며
그 특유의 냄새를 맡았던 아이들.
지금도 그 향은 어렴풋이 떠오르죠.

그건 잉크 냄새라기보다, 학교 냄새였습니다.

 

 

등사기란 무엇이었을까?


등사기는 지금의 프린터나 복사기 이전,
아날로그 시대의 복제 도구였습니다.

원고지를 ‘등사 원지’ 위에 철필로 눌러 써서 판을 만들고

그 원지를 등사기에 끼워 잉크를 얇게 입히고, 밀어내며 종이에 찍어냈죠

일종의 잉크 도장 복사 방식이라 보면 됩니다

잉크가 많으면 번지고,
적으면 흐리며,
판이 망가지면 전체를 다시 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의 작업으로 수십 장에서 수백 장까지 복사가 가능했기 때문에
학교, 교회, 지역 단체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등사기의 기억이 남은 장소들


등사기와 그 종이가 기억나는 곳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습니다:

 - 🏫 초등학교: 시험지, 알림장, 가정통신문

 - ⛪ 교회: 주보, 찬송가 가사집

 - 🏘 주민자치회관: 회람지, 공지사항

 - 🏫 고등학교 자습실: 요약정리집, 기출문제

보통 교무실 한쪽 구석, 또는 문서실에서 작동되는 등사기에서는
잉크와 기계의 열이 섞인 냄새가 풍겨왔고,
선생님은 그 앞에서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판을 닦거나 종이를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지금은 자동화된 프린터 한 대로 끝나는 일이
그땐 노동과 손의 감각으로 이뤄졌던 시간이었죠.

 

 

왜 사라졌을까?


등사기의 쇠퇴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필연적이었습니다.

 

🖨 ① 복사기의 대중화
1980~90년대 복사기의 가격이 점점 저렴해지면서
정확하고 선명한 출력물이 가능해졌습니다.

 

💻 ② 컴퓨터·워드프로세서 보급
원고를 ‘직접 쓰는’ 수고 없이
디지털로 편집하고, 출력하는 방식이 보편화됐습니다.

 

🌬 ③ 냄새, 번짐, 손의 피로
등사기의 특유의 냄새, 작업의 번거로움,
원고가 망가졌을 때의 재작업 스트레스는
결국 더 나은 기술로 옮겨가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등사기의 감각이 주던 정서


하지만 그 아날로그한 과정 속엔
지금은 사라진 ‘수고의 미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눌러 만든 원고

롤러를 돌려가며 쓸모 있는 종이를 찍어내던 손놀림

문서가 아니라, 노동이 남아 있는 복사본

그리고 등사지는 그 자체로 ‘우리 반만의 종이’였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글씨체, 레이아웃, 냄새, 종이 질감.
그건 교사가, 학생이, 친구가 만든 공동 감각의 매체였습니다.

 

 

📩 마무리하며: 당신은 등사지 냄새를 기억하나요?


지금은 너무 선명하고, 너무 정제된 디지털 문서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 시절 우리는 좀 번졌어도, 좀 기울었어도,
누군가의 손이 닿아 만든 종이를 받아 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