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도로 밑, 아무도 앉지 않는 벤치들
– 기능을 잃은 도시의 가구, 침묵하는 공간의 미학
오늘은 ‘고가도로 밑에 놓인 벤치’의 기묘한 존재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도시를 걷다 보면, 의외로 많은 이상한 공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고가도로 아래 놓인 벤치입니다.
언뜻 보기엔 앉기 위해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아무도 앉지 않는 그 벤치.
오늘은 이 “기능을 상실한 공공 가구”,
즉 ‘고가도로 밑, 아무도 앉지 않는 벤치들’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그 존재의 이유는 무엇이며, 왜 사람들은 외면하는 걸까요?
왜 아무도 이 벤치에 앉지 않을까?
서울의 한복판, 을지로와 청계천 사이의 어느 길.
나는 그날 우연히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다 이상한 풍경을 마주쳤습니다.
도심 속인데도 해가 거의 들지 않고, 자동차 소음이 울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던 그 공간.
그 한가운데 목재 벤치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앉으라고 만든 의자지만,
어딘가 ‘앉고 싶지 않게 생긴’ 분위기.
먼지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걸 보니,
최근 몇 주간은 아무도 앉지 않은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왜 이곳에 벤치를 만들었을까?’
잠시 멈춰 섰습니다.
생각해보면 이건 처음 보는 풍경이 아닙니다.
우리는 도시 곳곳에서 “기능을 잃은 벤치”를 만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심코 지나칩니다.
그냥 쓸모없는 구조물이라고 생각하고, 잊죠.
그런데 정말 “쓸모없다”는 말로 이 풍경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앉을 수 있다고 해서, 앉고 싶은 건 아니다
벤치는 본래 사람을 위한 가구입니다.
누군가 쉬기 위해, 잠시 앉아 사색하거나 기다리기 위해 놓여진 구조물.
공원에서의 벤치는 풍경과 어울리고,
지하철역 근처의 벤치는 이동의 흐름 속에서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고가도로 아래의 벤치는 조금 다릅니다.
햇살도 들지 않고, 바람이 거칠고, 주변엔 CCTV도 드물며,
가로등은 희미하고, 상가도 없습니다.
게다가 자동차의 굉음이 끊임없이 울리는 ‘소음 지대’입니다.
이런 공간에서의 벤치는,
휴식이 아닌 긴장을 주는 구조물로 변합니다.
앉는 순간, 우리는 불안합니다.
뒤에서 누가 올지도 모르고,
차가 쌩쌩 지나가며 소리로 압박감을 줍니다.
한마디로 말해,
“앉을 수 있다는 것”과 “앉고 싶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도시는 종종 이것을 혼동합니다.
‘앉을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쓸모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 자리를 외면합니다.
공공 디자인의 의도와 현실의 괴리
도시 계획자들은 종종 ‘죽은 공간’을 재생하려 합니다.
특히 고가도로 아래 같은 기피 공간(dead space)은 예산을 들여 꾸며야 하는 문제적 구역입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벤치입니다.
공공 디자인은 때때로 형식을 채우기 위한 장치로 전락합니다.
예를 들어 고가도로 밑에 벤치와 화단, 자전거 도로를 조성해 놓으면,
‘이 공간은 다시 살아났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서류상으론 훌륭합니다.
“도시재생사업 3단계 완료. 이용자 쉼터 및 교통동선 개선 완료.”
하지만 현실은 이용자도 없고, 쉼도 없는 공간일 뿐입니다.
나는 그날 이후, 여러 도시에서 고가도로 아래 벤치를 찾아다녔습니다.
서울 도봉구, 안양, 인천 부평, 수원역 근처, 심지어 부산 해운대 외곽까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체로 접근성이 나쁩니다. (차도로 둘러싸여 있거나 횡단보도가 없음)
의자 옆엔 쓰레기통도, 전등도, 안내판도 없음
일부 벤치는 지면이 기울어져 있어 실제로 앉기 불편함
주변엔 사람이 머무를 이유 자체가 없음
사람은 편한 곳에 앉습니다.
그건 단순히 의자의 ‘형태’가 아니라, 공간 전체가 주는 감정적, 심리적 신호에 좌우됩니다.
고가도로 밑의 벤치는 “앉지 말라”는 말을 벤치의 외형이 아닌 공간 전체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벤치는, 묘하게 아름답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벤치들이 묘하게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사용되지 않고, 기능도 상실했고,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그 존재가
도시의 풍경 속에서 아주 기묘한 정적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라진 벤치는,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세로 놓여 있습니다.
어쩌면 도시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너는 정말 이 공간을 몰랐던 건가요? 아니면 그냥 외면한 건가요?”
나는 그 벤치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앉지는 않았지만, 그 앞에서 내가 사는 도시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소외된 공간, 무의미한 구조물, 무시되는 동선.
그러면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벤치의 자세.
도시를 이해한다는 건, 그런 존재들을 들여다보는 일 아닐까요?
🧭 마무리하며: 당신 주변에도 그런 벤치가 있다면…
이런 공간은 사실 어디에나 있습니다.
당신이 자주 걷는 길 옆,
학교 근처 골목,
아파트 단지 외곽,
고속도로 진입 전의 도로변 쉼터…
당신도 그런 벤치를 본 적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