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사이 20cm 틈 – 그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 도시가 남긴 가장 얇은 경계선에서 마주한 것들
오늘은 ‘건물 사이 아주 좁은 틈’ 속 숨겨진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을 걷다 보면,
거대한 빌딩과 빌딩 사이,
혹은 주택가의 낡은 골목 어귀에서
문득 눈에 띄는 얇은 틈이 있습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까 싶은 공간,
빛도 잘 들지 않고,
무언가 오래 전부터 방치된 듯한 냄새가 나는
그 어둡고 차가운 경계선.
대부분은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저는 그런 공간 앞에서 자주 멈춰서게 됩니다.
‘저 틈 안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오늘은 그런 도시의 사이,
그 20cm 틈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20cm의 틈, 시작은 한 낡은 주택가에서
이 이야기는 서울 성북구의 한 골목에서 시작됩니다.
주변은 대부분 1980-90년대에 지어진 4-5층짜리 다가구 주택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고,
좁은 도로 옆으로 오래된 전봇대와 벽돌담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비 오는 오후, 우산을 쓰고 걷던 중
두 건물 사이에 아주 얇은 틈이 보였습니다.
정확히는 한쪽 벽돌 건물과
다른쪽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 사이에 난
약 20cm 정도의 공간.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데,
어쩐지 무언가 지나간 흔적 같은 게 보였습니다.
페트병 하나, 찢어진 현수막 조각,
그리고 담배꽁초 몇 개.
가까이 다가가자,
그 틈에서는 확실히 사람 손이 닿은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거의 통하지 않아 축축했고,
낡은 콘크리트 벽에는
누군가 긁어놓은 듯한 자국도 있었습니다.
그 틈을 누가, 왜 이용했을까?
그 좁은 공간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닥엔 벽돌이 일부 깔려 있었고,
벽면엔 오래된 수도 배관이 보였습니다.
그제야 감이 왔습니다.
이 틈은 원래 배관 설치 및 건물 유지보수를 위해 남겨둔
기술적 여백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누군가 ‘잠시’ 숨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입니다.
📦 ① 택배 기사, 배달원이 물건을 숨긴 임시 보관소?
한쪽 벽면에 비닐로 감싼 소형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아무런 표식도 없었지만,
주소를 쓴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혹시 누군가에게 전달되지 못한 택배였을까요?
그 공간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간단한 ‘비밀 보관소’처럼 쓰였을 수도 있습니다.
🚬 ② 골목 청소년들의 피신처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는 점원은 말하길,
“가끔 애들이 그 틈에서 담배 피다가 나오기도 해요.
잘 안 보이니까 숨기 좋잖아요.”
이해가 되었습니다.
밖에선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선 외부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구조.
그들에게는 숨고 싶은, 혹은 스스로를 가두는 공간이었을지도요.
🕳️ ③ 노숙인 혹은 길고양이의 쉼터
그 좁은 틈에서
누군가 비닐로 만든 조그만 은신처를 발견한 적도 있습니다.
처음엔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는데,
안쪽에 구겨진 담요, 우유팩, 구겨진 신문들이 보였습니다.
사람인지, 아니면 길고양이인지 모르지만,
분명 그곳은 누군가의 하룻밤 임시 처소였습니다.
도시의 건축이 만든 ‘잊힌 공간’
이런 틈은 도시 곳곳에 있습니다.
왜 생겼을까요?
🧱 ① 건축법과 필로티 설계의 틈
건축 구조상 두 건물은
불가피하게 법적으로 일정 간격을 둬야 합니다.
그 간격은 보통 최소 60cm지만,
좁은 땅에서는 건물 간 정렬이 엇갈려
결과적으로 아주 좁은 ‘사선의 틈’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틈은 배관, 전선, 배수구 설치 공간으로 활용되다가
건물이 오래되면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② 창문 없는 벽, ‘배면 공간’의 비극
이 틈은 보통 양쪽 다 창문이 없습니다.
햇빛도 안 들고, 사람도 접근하지 않는 완전한 사각지대.
도시의 뒷면, 혹은
‘보여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공간’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기묘한 감정이 들게 됩니다.
그 틈 안에서 느낀 감정들
그 좁은 공간 앞에 서 있었던 몇 분 동안,
나는 이상한 정적과 동시에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좁아서 불편한데도, 안전한 느낌
사라지고 싶은 욕망을 잠시 실현시켜줄 것 같은 공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다는 해방감
그곳은 사람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유혹하는 모순된 공간이었습니다.
마치,
도시가 숨기고 싶은 것을
조용히 감춰두는 장소 같았습니다.
🧭 마무리하며: 당신 주변의 ‘틈’은 어떤가요?
길을 걸을 때 우리는 보통
넓은 것, 높은 것, 화려한 것에 시선을 줍니다.
하지만 도시의 감정은 그 사이 틈에서 샙니다.
그 틈에서 누군가는 쉬고,
누군가는 도망치고,
누군가는 사라지길 바라며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