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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듯 멀쩡한 빈 집 – 살아 있는 폐가들

by afflux-th 2025. 7. 12.

무너진 듯 멀쩡한 빈 집 – 살아 있는 폐가들
– 골목 끝에 숨은 집, 시간의 껍데기

 

오늘은 ‘도심 속 폐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무너진 듯 멀쩡한 빈 집 – 살아 있는 폐가들
무너진 듯 멀쩡한 빈 집 – 살아 있는 폐가들

 

 

 

서울처럼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텅 비어 있으면서도 멀쩡한 집을 마주치는 건 꽤 이상한 일입니다.
누군가 살아야 할 공간이
그냥 그대로 멈춰 있고,
창문엔 먼지만 내려앉고,
대문은 반쯤 열려 있고…

‘폐가’라고 부르기엔 너무 멀쩡하고,
‘누군가 산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조용한 그 공간들.

오늘은
도시 속에 조용히 남겨진
살아 있는 폐가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 집을 처음 마주친 날

 

서울 한복판의 오래된 주택가.
좁은 골목길 끝에
유난히 조용한 한 집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2층 단독주택.
벽은 갈라졌고, 담벼락 위에 이끼가 내려앉았고,
우편함은 이미 녹슬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했던 건,
유리창은 깨지지 않았고,
커튼도 여전히 걸려 있었으며,
문패도 말끔했다는 점입니다.

마치 ‘잠깐 외출 중’인 듯한 느낌.
그런데 몇 주, 몇 달이 지나도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긴 대체… 왜 이렇게 남겨져 있는 걸까?”

 

 

폐가가 된 이유는 한 줄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후 몇몇 동네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돌아온 답은 대부분 이랬습니다.

“돌아가신 분 집인데, 상속 문제로 그냥 뒀대요.”

“건축 허가가 안 나서 재건축도 못 하고 그대로예요.”

“외국에 나가서 방치됐다는 말도 있고…”

“지금 소유주도 누군지 모른대요.”

정확한 사연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하고, 더 기묘하게 느껴졌습니다.

겉보기엔 ‘집’이지만,
그 집은 사람이 빠져나간 후 그대로 박제된 공간이었죠.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죽은 공간


폐가의 특징은

“거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지만, 뭔가 계속되는 느낌”입니다.

창문 너머로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는 순간,

마당에 핀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난 상태,

문 앞에 흘러든 전단지와 낙엽들.

이 모든 것이
그 집이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도 그걸 정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그 집이 ‘죽어 있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공간.
도시 속 ‘좀비 하우스’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그 집.

 

 

폐가가 주는 감정 – 단절, 망각, 그리고 궁금함


도시의 다른 집들은
누군가의 삶의 냄새, 시간의 변화,
세대 간 이동이 보입니다.

그런데 폐가에는
그 모든 것이 뚝 끊겨 있습니다.

문이 열리지 않으니,

기억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나는 그 앞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집 안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사진 앨범이나 책장, 냉장고 속 조리도구,
그 모든 것이 시간의 먼지 속에 파묻혀 있는 건 아닐까?

이상하게도 슬픔보다는 묘한 상상력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 집에 깃들어 있을 이야기들을 내가 마치 발굴자처럼 떠올리게 되더군요.

 

 

폐가가 도시 속에 남아 있는 이유


폐가의 존재는 때때로
도시가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로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도시를
늘 성장하고,
늘 리뉴얼되며,
늘 새롭게 ‘정비’되는 곳이라 생각하지만…

폐가는 그 흐름에서 비껴난 공간입니다.

법적 소유권 문제

건축 규제

경제성 부족

그리고 사람의 무관심

이 모든 것들이 뒤엉켜
그 공간을 ‘남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힘은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조용히 작동 중입니다.

 

 

도시가 폐가를 대하는 태도


폐가는 종종
행정적으로는 ‘관리 대상’이 아니라 ‘민원 대상’이 됩니다.

해충 발생

위험 시설

미관 저해

그래서 철거되거나 가려지거나
아예 존재 자체가 지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폐가야말로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도시의 기억’ 아닐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는 집.
말없이 시간을 견디는 집.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 마무리하며: 당신 골목에도 그런 집이 있지 않나요?


한 번쯤은 본 적 있을 겁니다.
밤마다 창문이 어둡게 막혀 있고,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머무는 폐가.

그곳은 그냥 낡은 집이 아닙니다.
도시가 기억을 포기하지 못한 공간이고,
누군가의 삶이 스러진 흔적이며,
언젠가 다시 열릴 수도 있는 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