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는 있는데 입구가 없다? – 미스터리한 지하통로
– 흐르지 못하는 공간이 남기는 불안함
오늘은 ‘종착 없는 지하통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보통 ‘지하통로’라 하면
지하철역과 역, 혹은 건물과 건물을 잇는 통과형 공간을 떠올립니다.
입구가 있고, 출구가 있고,
사람이 이동하는 길.
하지만 서울의 일부 거리엔
이상하게 “출구는 있는데, 입구가 없는”
혹은 “가다가 막혀 있는”
기묘한 지하통로들이 존재합니다.
도시가 계획한 흐름 속에서
길을 잃은, 멈춘, 끊긴 지하의 공간들.
오늘은 그 움직임이 사라진 공간들을 따라가 보며
도시가 무엇을 만들다 멈췄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서울 중심가, 계단 아래의 공허함
종로의 한 대로변.
횡단보도를 대신한 지하보도가 있다는 표지판을 따라
나는 인도 옆의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계단을 다 내려간 순간
마주한 건 닫힌 철문과 조명이 꺼진 어둠뿐이었습니다.
‘잠시 폐쇄된 건가?’
아니었습니다.
내부는 벽면이 벗겨져 있었고,
바닥에는 먼지와 낙엽,
오래된 담배꽁초와 낙서들.
문에는 “통행금지”라는 스티커가 반쯤 뜯긴 채 붙어 있었고
CCTV는 작동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가장 기묘했던 건,
출구 쪽 계단은 여전히 멀쩡하게 존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구나 내려올 수 있게 열려 있었고,
문제는 그 아래에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지하통로가 생겼을까?
지자체 보도자료와 오래된 도시계획 보고서에서
이런 지하공간들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 ① 원래는 상업·문화 연결 지하보도
1980~1990년대 서울에선
지상 교통 혼잡을 줄이고 보행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광범위한 지하통로 네트워크를 기획한 바 있습니다.
백화점 ↔ 지하철
시장 ↔ 주차장
공원 ↔ 쇼핑몰
이런 구조 속에
‘○○지하보도’, ‘△△지하연결로’가 탄생했죠.
하지만 이후 개발 중단,
민간사업자 철수,
부서 간 책임 미이행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완성되지 못한 채 방치된 경우가 생겼습니다.
📌 ② 민원과 재정 문제로 인한 폐쇄
또 다른 원인은
치안 문제와 무단점유, 불법 노점,
그리고 지속적인 민원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유동인구가 줄고
관리 인력이 없고
범죄 우려가 커지면
구청은 해당 지하통로를 “폐쇄 조치”하거나
부분만 남긴 채 문을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출구는 남고, 통로는 닫힌’ 형태가 된 것이죠.
지하공간이 주는 감정 – 방향 없는 긴장감
지하공간은 원래부터 심리적으로 불안한 장소입니다.
시야가 좁고
햇빛이 없으며
구조를 외우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공간이
‘중간에 끊겨 있다’면
그건 단순한 통행 불편을 넘어
불완전한 건축의 감정적 잔여물이 됩니다.
나는 그날,
계단 아래 2~3분 동안 혼자 서 있었습니다.
바람도 없고,
소리도 없고,
위에선 차들이 달리는 진동만 살짝 전해졌습니다.
그 공간은 마치
도시가 만들다 만 미로처럼,
잊힌 대화의 문장처럼,
불완전한 여운만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입구 없는 출구 – 상징성의 전도
건축학자들은 종종
“출구는 해방의 은유”라고 말합니다.
탈출, 이동, 연결, 다음 장소로의 전환.
하지만
입구 없는 출구는
그 자체로 방향의 전도를 상징합니다.
‘탈출구’가 아니라
‘버려진 문’,
‘막힌 길’,
‘닫힌 선택지’.
서울 한복판에 그렇게 놓인 수많은 계단들은
사람을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 사라진 구조물로 기능합니다.
폐쇄된 지하통로의 미래는 있을까?
일부 지하통로는
지자체 주도의 리모델링으로 부활합니다.
‘지하예술갤러리’, ‘마을박물관’, ‘버스킹홀’ 등으로.
하지만 그건 일부 중심지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고,
대다수는 예산 부족과 구조적 문제로
그냥 철거되거나 영구 폐쇄됩니다.
도시는
늘 ‘위’를 향해 확장하지만
그 밑에 있는 공간들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는 중입니다.
📩 마무리하며: 당신은 이 계단을 내려가 본 적 있나요?
우리 주변에도
수상한 계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건 어디로 이어지지?”
“왜 문은 닫혔지?”
“여기가 원래 뭔가 연결되어 있었나?”
도시가 멈춘 자리엔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우리를 더 깊이 공간의 서사 속으로 끌어들입니다.